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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윤경희 변호사] 사내 하도급 원청업체도 산업재해 책임진다(개정 산안법 제63조).

  나는 포항에서 나고 자랐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포항에서 살다 보면 어떤 기회로든 포스코를 견학 갈 일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교에서 단체로 견학을 갔다. 프로그램은 간단하다. 회사 설립부터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홍보영상을 시청한 뒤 일부 공개된 공장을 둘러보고, 포스코에서 생산한 스텐리스 강으로 만든 손톱깍이 세트 같은 기념품을 받아오는 것이다.

 

  지역경제에도 철강생산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는 여고생들은 하루 반나절 수업을 빠지고 학교 외부에 다녀오는 일이 마냥 좋아 행사는 들뜬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는데,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나는 침울했다. 심지어 눈물도 찔끔 났다.

 

  다름 아닌 공장의 모습 때문이었다. 밖은 분명 낮이었는데 공장 내부는 어둡고, 선생님들이 여러 번 조심을 당부할 만큼 계단은 많고 가팔랐으며, 기계는 무시무시하게 움직이고, 소음도 엄청났다. 나는 그 장소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귀가 멍하고 정신이 혼미했다.

 

  나의 아버지도 철강공단 노동자였다. 그는 포스코보다 더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일했다. 나는 그가 일하는 공장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내가 잠시 봤던 그 날, 그곳의 모습이 아버지의 일터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서늘해졌다. 이후 누군가가 발을 헛딛거나 기계에 끼어 다치고 혹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밤이면 나는 그날 봤던 그 공장에서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곤 했다.

 

  그래도 그때는 사고를 당한 이들의 신분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직장동료였다. 그래서 회사 직원들이 단체로 조문을 가고, 노동조합은 회사측에 사고방지 대책을 요구했으며, 병원에 찾아가 사과를 하고 비는 사람도 아버지 회사의 임원이었고, 사고처리 책임도 회사에서 졌다.

 

  그런데 요즘은 그마저도 되지 않는다. 위험의 외주화 때문이다. 기업들은 경영의 효율화를 이유로 사고 발생의 위험이 있는 업무들을 우선 외주화(Out-sourcing)하여, 하도급을 주었고,사고 발생의 장소가 도급회사 내부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사고 및 보상 책임은 근로자가 소속된 하청 업체에 있다. 도급회사는 ‘우리 회사의 책임이 아니다’는 말로 책임을 피하고 그들이 지는 책임은 도의적 책임이 된다. 위와 같은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 발생율은 원청노동자에 비해 7배나 높은 수준이다.

 

 2018. 12. 10. 태안발전소에서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 죽은 24살의 김용균씨도 서부발전주식회사의 직원이 아니었다. 2010~2018년 서부발전에서 일어난 산재 69건 중 원청직원이 피해를 입은 사례는 4건, 그 외 사건은 모두 하청업체에서 발생했으며, 사망사고 13건은 전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2019. 1. 15. 산업안전보건법이 통과되었다. 아무도 통과를 장담하지 못했던 법률안이 김용균시 사망 이후 높아진 국민적 공감대와 관심 덕분에 통과된 것이다. 김용균씨 사고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조문은 개정안 제63조로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이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이다. 이 법으로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관련해 안전·보건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다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산재사고에 대한 책임을 벗을 수 있게 된다.

 

이제 원청은 하도급을 주었더라도 시설관리 및 안전조치에 관련된 비용을 부담하고 하청의 감독에도 신경쓰도록 되었다. 이것으로 비용 절감을 위해 무분별하게 외주화 하던 기업의 행태에 일차적인 제동은 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위험의 외주화 자체는 막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도 뚜렸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은 무엇보다 산업재해 예방에 있다. 이 법이 시행일은 2020. 1. 16.로 앞으로 후속 시행령과 시행규칙 입법이 뒤따라야 한다. 부디 꼼꼼하고 충분한 하위입법으로 28년 만에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목적에 맞는 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윤경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