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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회사에서 내 소신을 지키기가 너무 힘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내가 대답했다. “그거 당연한거 아냐? 조직이란 다 그런거 아냐? 누가 자기소신을 지키며 조직생활을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씁쓸한 대답이었다.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소신(所信)이란 바 소(所), 믿을 신(信)이다. ‘나 자신을 믿는 바(것)’가 소신이다. 소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 행동하려 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하려는 바를 믿고 끝까지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내가 믿는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가려면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주위의 분위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윗 사람의 의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을 겪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소신은 없어지고 처신만 남는 것 같다.

 

 어느 시대건 본인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게 보인다. 요즘은 더 그런 것 같다. 통신 등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한 사람의 소신있는 의견이 다수의 뭇매를 맞는 경우가 많다. 다수의 의견과는 다른 소신을 말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왜 그 사람이 저런 주장을 할까 한번쯤 생각해 볼만도 하지만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공동체의 분위기를 헤치는 것으로 여긴다. 다수의 의견이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무리의 가장 힘 있는 사람의 의중을 따르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 사람들이 소신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전체와 다른 소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한번쯤 되돌아보고 그것의 의미를 세심하게 살펴 볼 수 있는 공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 세상에는 소신있게 살다가 가신 분들이 많다.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힘든 삶이었지만 본인은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생활하기가 정말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그 속에서도 그렇게 살아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경을 금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소신을 가지고 세상의 앞에 나서신 분들도 많다. 비록 본인의 생각보다 너무나 커다란 불의의 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벽에 부딪치다 결국은 넘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그 벽은 무너진다. 벽이 무너지는 날 많은 사람들은 그 벽을 향해 소신있게 달려들었던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더 나은 곳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평생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셨던 한 분의 삶이 내 가슴을 스친다. 생전에는 모르고 있었던 그분의 삶의 궤적들을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내가 너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분의 삶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다잡아 본다. 힘들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옮음을 지키며 살아가자고.